고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북아프리카, 폴리네시아, 페루, 프랑스 등지에서 구멍이 뚫려있는 사람의 두개골을 발견함에 따라 머리뼈에 구멍을 내어 수술을 하는 치료법(천두술, Trephination)의 역사는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뾰족한 돌이나 물고기의 치아를 이용해서 두개골에 구멍을 내었을 것으로 추정 하는데, 구멍이 커서 두개골 절제술에 해당되는 사례도 있고 그 기술이 뛰어나서 현대의 수술기구로 한 것과 거의 같은 수준의 사례들도 발굴되었다. 그중에 페루의 파라쿠스(Paracus) 지역의 잉카인들의 묘지에서 발견된 천두술을 시행한 두개골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최소 기원전 500년 이전) 것인데, 두개골과 함께 나무손잡이에 고정시킨 흑요석으로 만든 구멍을 뚫을 수 있는 삼각형의 칼도 같이 발굴되었다.
다른 발굴된 두개골 중에서는 절개된 두피가 서로 붙어 있었던 것도 있었으며, 어떤 경우는 상처부위의 머리카락을 서로 잡아 매었거나 마른 솜으로 상처부위를 덮어둔 사례도 있었다. 두개골 결손부위에 때로는 금으로 만든 시트로 덮여 있기도 하였고 골수염의 흔적 없이 치유된 것도 있었다. 이러한 천두술 내지 두개골 절제술로서 두개골을 뚫고 들어간 화살 끝, 부서진 두개골 파편, 두개강 내에 고여 있는 피나 고름들을 제거했고 또는 정신병이나 간질 환자에 대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귀신을 빼내려고 시행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그리고 어떤 두개골에서는 질환이 치유된 흔적까지 있어서 천두술을 받은 사람이 정상으로 회복되었을 것이라는 추정까지 할 수가 있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되고 가치가 있는 의학에 관한 문헌은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인데, 기원전 17세기 이전에 기록된 문헌으로 수막(Meninges), 뇌척수액, 두개강내박동,두개봉합 등에 관해서도 기록되어 있고 뇌손상 후에 반대 측에 반신마비가 나타난다든지 사지마비, 배뇨장애, 경수손상 후, 음경의 지속적 발기 등이 나타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문헌에는 가상적인 48개의 증례에 대한 치료방법 및 예후 등에 관하여 기록되어 있는데, 그중 27례는 머리손상이다.
그리스 의학에 과학적 정신을 불어넣고 윤리적 모범을 제시함으로써 현대의학의 시조라고 불리우는 '히포크라테스'의 자료 중에서 신경외과와 관련이 있는 기록이 아주 많다. 천두술을 시행할 때, 그가 사용한 기구나 방법은 현대의 수술과 아주 흡사하며 안면 신경마비, 좌골신경통 환자는 물론 두통, 시력장애, 구토 등의 세 가지 증상을 다 가지고 있는 환자에 대해서도 기술하였다. 또한 뇌기능 장애로 인한 실어증, 안구운동장애, 무의식상태 등에 관해서도 빈틈없이 관찰하여 기술하고 있으며, 머리 한쪽에 타박상을 심하게 입으면 때로 반대쪽 상하지에 경련이나 마비가 올 수도 있고 뇌경막이 찢어진 환자의 경우 치료 후에도 상태가 좋지 않다는 사실도 간파하였다. 또 그는 두개골 골절과 뇌손상을 분류하였고 수술적 치료법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두피에 찔린 상처도 쉽게 보면 안 된다고 말하고 두개골의 금이 갔을 때는 천두술을 권유하고 있었으나, 광범위한 함몰골절인 상황에서는 천두술을 반대하였다. 히포크라테스의 업적은 19세기에 현대의학의 태동이 있을 때까지 약 2000년간 외과의사들의 훌륭한 롤모델이 되어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 의학의 또 다른 거목인 '갈렌'은 실험생리학 및 실험신경학의 창시자이며, 처음으로 뇌신경, 교감신경, 제3·4뇌실, 뇌량(Corpus Callosum), 뇌하수체, 갈렌정맥 등을 기술하였으며, 실험적으로 척수를 절단하여 하반신마비를, 회귀 후두신경을 잘라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증상을 만들었다.
로마제국의 쇠퇴와 암흑기인 중세시대를 거치는 동안 뇌손상에 관해서 활발한 연구가 있었고 서기 936년부터 1013년까지 중세시대에 안달루시아 지방에서는 알 자하위가 머리 부상, 두개골 골절, 척추 부상, 수두증, 경막하 유출 및 두통에 대한 수술을 시행했다. 간단한 형태의 신경 수술은 1559년 프랑스의 왕 앙리 2세가 마상 창시합에 직접 참가하였다가, 몽고메리 백작 가브리엘 드 로르주의 창에 눈을 정통으로 가격 당하는 사고로 인해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후에 행해졌는데, 당시 그 분야의 전문가였던 암브로이즈 파레(Ambroise Paré)와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는 앙리 2세를 치료하기 위해 그들만의 방법을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중국에서는 삼국지에서 관우와의 일화로 널리 알려진 '화타'가 뇌에 대한 수술 절차에 사용했던 마비산(mafeisan)이라고 불리는 최초의 전신 마취제를 만들었다.
르네상스 시대로 들어가면서 여러 인물들의 업적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실비우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자크 두보아'라는 프랑스의 해부학자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각종 혈관과 근육의 이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제자 '베실리우스'가 갈렌 이후에 혈액순환론을 확립한 '하비'의 이론까지 집대성하여 유럽의학의 기반을 만들었으며, 특히 오늘날의 해부학의 기초를 세웠고, 뇌에 대한 연구를 많이 실시하여 두개학(Craniology)의 선구자로 머리의 형태를 여러 가지로 분류하였다.
신경외과학의 역사 - 최근의 획기적 발전2 (0) | 2024.03.02 |
---|---|
신경외과학의 역사 - 최근의 획기적 발전1 (0) | 2024.02.29 |
신경외과학의 역사 - 현대 (0) | 2024.02.28 |
신경외과학의 역사 - 현대 (쿠싱과 댄비) (0) | 2024.02.28 |
신경외과학의 역사 - 근대 이후 (0) | 2024.02.27 |